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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캠프의 외톨이' - 신지훈
작성자 admin 작성일 2012-01-26 조회 3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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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특별한 전화를 받았다. 예일대학교에서 처음 주최하는 몰스 여름음악캠프에 교수로 와달라는 것이었다.
가정형편이 어렵지만 음악가를 꿈꾸는 뉴헤이븐지역 아이들 40여 명을 모아 4주 동안 음악이론도 가르치고 연주회도 하게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플루트반 아이들은 모두 여덟 명. 다들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가정형편이 어려운데다 캠프생활을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천방지축인 아이들이었다. 음악을 가르치는 것은 고사하고 내가 과연 이 아이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을지조차 걱정이었다.

손가락 운지법과 간단한 악보만 간신히 볼 수 있는 아이들을 데리고 매주 연주회와 앙상블 준비, 음악이론을 공부할 생각을 하니 앞이 까마득했지만 아이들과 따뜻하고 서슴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 같은 선생이 되리라 마음먹고 첫 수업에 들어갔다.
아이들은 반쯤은 겁먹은 얼굴로, 반쯤은 기대에 찬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나 또한 정말 잘해보리라는 의욕과 초보선생티를 벗지 못한 떨리는 얼굴로 아이들 앞에 서 있었다.
어색한 자기소개시간이 지나고 한 명씩 나와 준비한 음악을 들려주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캐서린은 다른 아이들과 달리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악보도 볼 줄 모르고, 운지법도 도, 레, 미, 파, 솔까지만 알았으며, 악기 잡는 손 모양새도 엉망이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미 선발되어 들어온 아이라 다시 집으로 돌아가라고 할 수도 없었다.
첫날 일정이 끝난 후 강사?스태프 회의에서 캐서린을 어떻게 해야 할지 논의했다.
캠프 측에서는 어떻게든 캐서린을 가르치자고 했다. 그렇지만 단체 앙상블연습이 많아 내가 캐서린만 돌봐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른 선생님이 캐서린에게 운지법과 악보 보는 법을 가르치기로 했다.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지만 다른 아이들도 책임지지 않을 수 없었다.

첫 연주회 준비가 한창이던 어느 날, 악기를 들고 털털 계단을 내려오는 캐서린을 보았다. 무척 기분이 나빠 보였다.
나는 아이들에게 잠시 각자 연습하라고 한 뒤 캐서린을 데리고 옆방으로 갔다.
손은 인조손톱을 붙여 새빨갛게 칠하고, 머리는 화려하게 염색하고, 몸에 작은 듯한 옷을 입은 그 아이가 너무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그동안 얼마나 플루트가 배우고 싶었는지, 하지만 학교 선생님은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았다는 것, 잔뜩 기대하고 온 캠프에서도 실력이 부족하여 외톨이로 떨어져 속상했다는 것, 다른 선생님도 역시 신경을 써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부족한 것은 알지만 그래도 나와 아이들과 같이 연주도 하고 같이 있고 싶다고 했다.
너무 미안했다. 울지 말라고 안아주고 토닥거리는데 나도 눈물이 났다.
앙상블연습시간을 조금 줄이더라도 꼭 내가 책임지고 가르쳐주겠다고 약속했다. 그 아이를 데리고 연습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은 일곱 아이들의 태도였다. 문밖에서 엿들어 자초지종을 알게 된 아이들은 캐서린에게 모르는 것은 자기들에게 물어보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서로 아우성을 쳤다.
부는 흉내만 내도 좋으니 같이 연주하자며 여덟 명이 모두 무대에 서는 게 좋다고 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의 그 따뜻한 마음에 내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순간이었다.
캐서린을 위하여 앙상블 곡도 보다 쉬운 곡으로 바꾸고, 캐서린이 혼자서 무대에 설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그렇게 다가온 첫 번째 연주회가 예일대학교 몰스 리사이틀홀에서 열렸다. 예일음대 재학생들도 앞다투어 예약하려고 하는 이 홀을 대학교 측에서는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일주일에 3~4일을 내주었다.
큰 무대를 본 아이들은 연주회 전에 이미 주눅이 들었다. 갑자기 연주하고 싶지 않다는 아이도 있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무대에 선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야기해주기 시작했다. 열심히 준비한 연주를 들으며 관중들이 얼마나 기뻐할지도…

아이들은 내 이야기에 반신반의하더니 이내 용기를 내어 무대에 올라갔다.
아이들은 차분히 연습한 곡을 연주했다. 서로 눈을 맞춰가면서 한 아이가 틀리면 옆의 아이가 손가락으로 악보를 짚어주며…
그렇게 첫 연주를 마치고 내려온 아이들의 볼은 새빨갛게 상기 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너무 떨리고 흥분되었는데 막상 무대에 올라가니 생각보다 두렵지 않았다고 쉴 새 없이 떠들더니 교실에 발을 들여놓기가 무섭게 다음 연주회엔 어떤 프로그램을 할 건지 묻기 시작했다.
이렇게 조금씩 아이들 마음속에 쌓여간 자신감은 둘째 주, 셋째 주 연주회에선 더욱 행복한 마음으로, 마지막에는 한없는 아쉬움으로 임하게 되었다.

그렇게 화살처럼 빠르게 4주가 지나갔다. 마지막 연주회를 마친 우리는 아쉬운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동안 고생했다고… 고마웠다고… 또 만나자고…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써주기 위해 카드를 고르던 마지막 날, 그 시간에 아이들이 어떤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 나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마지막 아침, 섭섭한 마음을 안고 교실로 올라가는데 한 아이가 내려오더니 아직 들어가면 안된다며 말렸다. 의아해하는 내 앞을 강사들과 학생들이 수군수군 거리며 지나갔다.
30분 정도 지났을까, 이제 교실에 가도 된다고 허락(?)해주었다. 무엇이 그렇게 좋은지 아이는 함께 올라가는 내내 입가에 웃음을 꾹 참고 있었다.

교실 문을 여는 순간 아이들이 일제히 “서프라이즈!!!!!!!!” 하고 외쳤다.
앞에서 내 놀란 얼굴을 열심히 사진 찍는 아이들, 경쾌한 음악, 교실에 장식된 풍선과 리본… 왈칵 눈물이 났다.
그뿐만 아니었다. 책상을 한쪽으로 모아 마련한 식탁 위엔 아이들이 직접 구웠다는 케이크와 음료수, 어머니들이 준비해준 온갖 음식이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열심히 준비했다는 아이들을 보며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따뜻해져 왔다.

그렇게 우리들만의 조그만 이별파티가 시작되었다.
다른 부 강사와 학생들이 우리 교실을 기웃거릴 때마다 “이건 저희 플루트부끼리만 함께하는 시간이에요!!!” 하며 조금은 냉정하게 쫓아내던 아이들… 아직도 아이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생생하고, 그 4주간의 하루하루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음악은 이런 것이 아닐까. 마음만으로 눈빛만으로 생각만으로 서로 소통할 수 있고, 그로 인해 서로가 행복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
그 아이들은 비록 화려한 테크닉도, 좋은 소리도, 음악성도 없을지 모르지만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음악가로서의 한 가지, 바로 따뜻한 마음과 그것을 사람들과 나누겠다는 그 마음 하나는 여느 유명 음악가 못지않다고 생각한다.


신지훈/플루티스트

2011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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