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게 몸단장 끝내고 세상 것 다 가진 양 빠르고 희망찬 걸음으로 직장을 향해 달려간다.
노령으로 몸이 불편한 어른들이 여생을 보내는 요양원이 내 직장이다. 내 삶 전부를 쏟아 붓는 사랑의 공동체요 평화로운 둥지다.
일과를 시작하기 전 각 방을 돌며 지난밤 안녕하셨는지 한 분 한 분 손을 잡아본다. 심장의 피를 서로 교환하는 시간이다.
지난밤 비가 와서 온몸이 아파 죽겠다는 분, 혀와 목이 어눌해 방언처럼 말을 하는 분, 걷는 모습이 ‘학’ 같은 학 어르신.
이곳저곳 배회하며 사물함 만지고 소지품을 속옷에 넣는 어르신, 그렇게 많이 드시고도 만나기만 하면 먹을 것 달라는 분…
알츠하이머 치매, 혈관성 치매, 루이체 치매가 있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어른들이다.
더욱 낮은 자리에서 섬기며 사랑하리라 다짐해보지만, 대소변으로 시트를 교체해야 하거나 대변을 침대나 가드레일에 묻혀 힘들게 할 때는 목소리가 ‘미’ ‘파’까지 높아지려 하다가도 문득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생각하며 “대변 많이 보셔서 속이 시원하시겠습니다”라며 낮은 ‘도, 레’까지 음성을 낮춘다.
그렇게 사랑 가득해져 뒷정리까지 말끔히 해드리고 손을 씻으며 거울을 보면서 ‘주님, 나 참 잘했지요? 주님의 딸이라 당신 하라는 대로 합니다’ 하며 혼자 웃는다.
처음 시작할 때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눈물을 쏟기도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대소변도 장갑 없이 손으로 만지는데 그 때의 행복은 가져본 자만이 맛볼 수 있다.
이곳 원장님도 감동이다. 연세 들면 손톱 아래에 살이 두꺼워져 손톱깎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데, 그 많은 어르신들 손발톱 깎기에다 두발정리는 물론 때로는 전신목욕까지 해준다.
손수 만들어 상에 올리는 쌈장은 또 얼마나 맛있는지… 가장 낮은 자리로 눈높이를 낮춰 어르신을 섬기는 원장님이 때로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나는 50이 넘도록 아이 양육과 남편 내조에만 전념했으나 집에 폭풍이 몰아닥쳤다. 어려운 형편은 나를 가만 있게 두지 않았다.
주께서 나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려고 이런 기회를 주시나보다 생각하고 죽기 아니면 살기로 기도원에 들어갔다.
20일 금식기도 중 말씀이 들려와 받아적었는데 적고 보니, 다 주시겠다면서도 물질은 빠져 있었다.
그래서 ‘주님, 돈이 없네요’ 했더니 응답이 ‘네 몸이 돈이다’ 해서 너무나 놀라 ‘해도 해도 너무하세요. 굼벵이는 굴러가는 재주라도 있지만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했더니 ‘건강한 육체와 사랑이 있잖아’ 하시는 거였다.
너무 기가 막혀 며칠 동안 기도굴 속에서 눈물만 쏟았다.
내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신다는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내려오는 산길에서 예전부터 아이 셋 대학 진학하면 독거노인이나 청소년가장 돕기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래서 양로원에서 일을 시작했다.
요양보호사로 일하고부터는 아침에 일어나면 지난밤 숙면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리고 행주, 걸레, 이부자리를 줄에 널면서 공기와 햇볕을 주심에 감사드리고, 출근 전에는 우리 집을 주셨음에 감사드린다.
이 일을 한 지 4년여 만에 그 수입이 씨앗이 되어 또 한 채의 집을 갖게 되었고 그건 아들 몫으로 주었다.
주신 것에 대한 감사로 어르신들 섬김에 이 목숨 다하리라.
돈이 필요한 사람이나 부부갈등 고부갈등으로 밤잠 못 자는 분,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분들 모두에게 크게 외치고 싶다. 이 세상에 얼마든지 있는 가장 낮은 일자리를 찾으면 그 모든 것이 분명히 해결되리라고…
환경이 나쁘다거나 재주가 없다고 한탄하지 말고, 무슨 일이든 주어진 시간에 뜻을 다하고 목숨 바쳐 남을 섬기며 부끄럼 없이 일하면 큰 행복이 주어지는 걸 나는 이렇게 체험하고 있다.
손영순/요양보호사
2010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