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 나눔글
제목 '도서관으로 소풍 가자' - 박이랑
작성자 admin 작성일 2012-01-25 조회 3582
첨부파일

‘시민을 편안하게! 즐겁게! 행복하게! 문화 정보 지식의 요람 중앙도서관’
우리 도서관의 슬로건이다. 친구들에게 도서관에서 근무한다고 하면, 한결같이 “나도 모르게 언제 사서공무원 시험쳤냐”며 의아해하곤 한다. 그럴 땐 나도 “진짜 사서였으면 얼마나 좋겠냐” 대꾸한다.
기간제근로자 면접에서 개관 이래 우리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한 내 이력을 한껏 어필한 덕분에 운 좋게 나는 주말 보조사서로 근무하게 되었다.

아침에 출근해 ‘Hide and Seek’이라고 쓰인 개나리색 앞치마를 두른 후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고 나면 말 그대로 책과의 숨바꼭질이 시작된다.
나는 쪼르르 달려와 책을 찾아달라는 어린아이의 부탁에 책과 숨바꼭질을 하고, 사람들은 책 속에서 저마다 원하는 답과 행복을 찾기 위해 숨바꼭질을 하는 것이다.

호수공원 산책로와 맞닿아있는 도서관 위치 덕분에 통유리 벽을 통해 쏟아지는 눈부신 햇살과 반짝이는 호수의 물결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은 일하며 누릴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 중 하나다.
그래서인지 도서관 딱지가 붙어있는 책을 열 권쯤 쌓아놓고 독서에 몰두하는 사람들에게서조차도 꽉 막힌 책벌레의 아우라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그들의 두 눈은 반짝반짝 빛날 뿐이다.

요즘 도서관을 옛날처럼 그저 책 몇 권 대출하고 반납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고요한 도서관에서 책이 빽빽이 꽂힌 책장들 사이를 나 홀로 누비며 천천히 책을 고르던 여유는 사라진 지 오래다.
도서관도 그야말로 바쁘게 살아 움직이는 하나의 유기체로 변화하고 있다.

인기 있는 책이 들어왔나 확인하려고 매일같이 사서에게 얼굴도장을 찍으며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들도 있고, 책 한 권 대출하기 위해 몇 주 쯤 기다리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시민들도 부쩍 늘었다.
특히 주말이면 도서관은 다양한 사람들로 더욱 활기차게 움직인다. 그 나라의 과거를 알고 싶으면 박물관에, 현재를 알고 싶으면 시장에, 미래를 알고 싶으면 도서관에 가보라는 명언처럼, 도서관은 꿈을 가진 이들의 터전이다.

휴게실에서 간식을 먹으며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학생들의 웃음, 두꺼운 전공서적과 씨름하는 대학생들의 사각거리는 펜소리, 제 몸통만 한 책을 힘겹게 안고 빌려달라며 아장아장 걸어오는 아기의 발소리, 만삭인 배를 쓰다듬으며 책을 읽는 임산부의 조곤조곤한 목소리는 나를 즐겁게 하는 소리들이다.
도서관에서 여는 명사초청강연과 독서토론학교에 참여하고 얻는 것들은 공짜로 가져가기엔 미안할 정도로 알짜배기다.

유일하게 지위고하와 빈부에 상관없이 지식 앞에 누구나 평등해질 수 있는 곳이 바로 도서관이다. 신용만을 담보로 책을 빌려주니…
대출과 반납을 반복하다보면 자기 책과 도서관 책을 혼동하여 반납하는 회원들이 많다.
반짝반짝 빛나는 개인 책에 비해 도서관장서는 여기저기 찢어지고 낡고 변색해 초라한 모양새다.
책에도 그 나름의 인생이 있다고 한다면, 도서관 딱지가 붙은 도서관장서는 사람으로 치자면 역마살을 타고난 것이 아닐까.

방대한 이 책들은 누군가의 손에 의해 빠져나갔다가 다시 제자리로 찾아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떠돌이의 삶이다.
그렇지만 불쌍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제 몸 바쳐 인간을 성숙하게 하고 즐거움까지 주니 완벽히 이타적인 삶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어쩐지 책을 닮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이번 주말 가까운 도서관으로 소풍을 나가보는 것은 어떨까. 그 무엇도 준비할 필요 없이 소풍가듯 들러도 아무도 당신을 나무라지 않을 그곳으로…
아마도 당신은 한 뼘 더 자라있을 것이다.


박이랑/대학생

2010년 6월호

'새벽 눈길 그리고 첫 선물' - 신용자
'늘어난 팬티' - 유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