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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열흘만 있으면 드디어 결혼!' - 정재원
작성자 admin 작성일 2012-01-20 조회 3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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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한 지 올해로 5년째, 드디어 결혼을 하게 된다.
스물다섯에 만나 서른에 하는 결혼이니 첫 만남부터 지금까지 연애의 달콤쌉싸름한 모든 것들을 겪어봤다.
하루라도 만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던 설레임의 나날들을 지나 일주일에 한 번 만나도 뭘 할지 고민하던 권태기까지….
상처와 다툼 끝에는 이별을 고해보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번번이 ‘그래도 이 남자 말고 또 누굴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되돌아오곤 했다.
양가부모님의 상견례를 마치고 결혼준비를 시작하게 되자 주위 사람들은 저마다 근엄한 표정으로 조언했다.
“결혼은 집안과 집안의 만남이야. 이제부터 고생 시작이다. 제일 많이 싸울 때니까 마음 단단히 먹고 꼼꼼히 따져가면서 준비해. 남들 하는 거 다하고 받을 거 다 받아야 뒤탈 없는 게 결혼이다.”

결혼준비라는 게 신접살림집 구하고 대충 채워 넣으면 되는 줄 알았던 나는 갑자기 조급한 마음이 들어 결혼준비를 하는 예비신부들의 커뮤니티에 가입했다. 그곳은 별천지나 다름없었다.
스드메스튜디오촬영, 드레스, 메이크업 견적은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 예단비와 봉채비, 꾸밈비가 무엇이며 어떻게 잘 받는 것인지, 예단 삼총사와 예물 삼종 세트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이바지와 답바지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수많은 질문과 답변으로 정보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난 절대 이런 허례허식 따위는 하지 말아야지!’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도 점점 동화되기 시작했다.

만나기만 하면 예단이 어떻고 예물이 어떻고를 읊조리는 나에게 남자친구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왜 그렇게 해야 해? 그냥 우리한테 필요한 것만 하면 되지.”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지. 하지만 이렇게 줄 거 다 주고 받을 거 다 받는 게 나중에 딴소리도 안 나오고 이로운 거래.”

그렇게 우리도 남들처럼 예물도 보러 다니고 명품가방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엄청난 가격에 입이 벌어졌다가도 “그래도 예물인데 이 정도는 하셔야죠.”라는 말 한마디면 정말 그런가 보다 싶었다.
남자친구는 예물을 마련하겠다는 내 의견에 내내 시큰둥한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백화점에서 실컷 눈요기만 하다 나왔더니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파 길거리에서 국화빵 한 봉지를 사들었다.
따끈따끈하고 고소한 국화빵을 하나씩 입에 넣으며 길을 걷는데 갑자기 남자친구가 말했다.
“있잖아, 나는 너무 감사하다.”
“뭐가?”
“아무것도 없는 나에게 너무나 많은 걸 주시는 주님께 감사하지. 우리가 이렇게 만나 결혼하게 된 것도 너무 감사하고….”
뜬금없는 그의 말에 나는 국화빵을 꿀꺽 삼켰다.
“나는 지금 내가 가진 것에도 감사하지만, 못 가진 것에도 감사해.”
“그래. 나도 감사해…”
맞장구를 쳐주면서 왜 그렇게 목이 메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던지….
‘그래, 다이아반지 그까짓 거 없으면 어때. 가진 것에 감사하고 못 가진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랑하는 남편이 생기는데…’
결혼이란 게 주고받는 장사도 아닌데 남들처럼 하려고 했던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입속에는 국화빵을 한가득 넣고 눈물을 방울방울 흘려대는 나를 보며 남자친구는 당황하다가 이내 내 손을 따스하게 잡아주었다.
결국 우리는 예단과 예물을 대부분 생략하고 반지만 하나씩 나눠 끼기로 했다. 우리에게 의미있는 것들만 준비하니까 싸울 일도 별로 없었다.
결혼이 열흘 앞으로 다가온 지금, 앞으로 함께 살아가려면 좋은 일도 있겠고 나쁜 일도 있겠지만, 눈물 젖은 국화빵을 삼키며 걷던 그날처럼 감사하는 그 마음 하나만큼은 잊지 않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정재원

2008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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