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긴 연휴의 마지막 날, 아침을 느지막이 먹고 잠이 들었다. 오후 늦게야 깨었다.
아내는 “이제야 잠에서 깨어나셨네요, 무얼 좀 드셔야 할 텐데 사과 좀 드릴까요?” 하면서 냉장고에서 사과 한 개를 꺼내 접시 위에 나이프와 함께 내놓았다.
지난번 성묘 길에 고향에서 사가지고 온 품질 좋은 사과였다. 사과박스에서 빛 좋고 잘생긴 사과 반을 골라 냉장고에 넣어 둔 것이었는데 아내가 고른 사과는 그 중에서도 더 빛깔도 고와 보였다. 서늘한 상태여서 아주 맛있게 보였다.
나는 사과를 집어 들었다. 반쪽은 빨갛게 잘 익었고 나머지 반쪽은 약간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나는 나이프로 그 사과를 붉은색 쪽과 옅은 푸른색 쪽으로 반씩 갈랐다.
그리고는 붉은색 반쪽을 접시 위에 남겨놓고 푸른색 쪽의 껍질을 깎았다. 그리고는 아내에게 말했다.
“사과가 정말 잘 익었네. 여보, 당신도 반쪽 좀 드셔보세요.”
내가 맛있게 사과 먹는 모습을 보면서 아내는 붉은 반쪽을 깎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 큰아들 상현이가 우리부부가 앉아있는 식탁 쪽으로 다가왔다. 아내는 아들을 보자 “상현아, 사과 먹을래?” 하고 말했다.
아들은 그 소리에 흘낏 내 쪽을 쳐다보았다. 아내는 사과껍질을 다 깎은 후 세 조각으로 갈라 접시 위에 놓았다.
이때 아들놈이 다가와 가장 크게 토막 난 한 조각을 집어들었다. 나는 순간 ‘아니, 저 반쪽은 일부러 아내를 위해 남겨놓은 반쪽인데… 저놈이 먹다니.’ 하는 아쉬운 마음이 솟아올랐다.
이때 아내는 조각낸 사과를 접시위에 올려놓고는 베란다 밖에 있던 썩은 사과 한 알을 집어와서는 깎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아내를 보며 말했다.
“여보, 접시에 깎아놓은 사과부터 먹고 나서 다른 사과를 또 깎지 그래요.”
이 말은 사실, ‘접시 위 나머지 두 조각은 엄마 몫이니까 네가 먹으면 안된다.’는 아들에게 보내는 나의 메시지였다.
그 말이 떨어지자 아들은 머쓱해져 접시 위에 남아있던 나머지 두 조각의 사과를 손으로 집으려다 말고는 돌아서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자 아내는 얼굴빛이 변하며 “아니, 당신은 늘 먹는 것 가지고 아들을 구박하고 있구려.” 하며 화난 표정을 지으며, 아내가 먹으려고 깎던 썩은 사과를 깎은 후 쟁반 위에 내려놓고 뒤돌아 자기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순간 어색하고 난감한 분위기로 주위는 조용해졌지만 나는 멍한 기분이 되었다. 이 무안한 심경과 슬픈 심경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마음이 착잡해졌다.
우리 집에서 가끔씩 일어나는 에피소드다. 아내를 위하다 아내와 아들에게 상처준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휴일아침 우리 집 식탁에서 일어난 풍경 한 토막을 다시 소개하겠다.
나와 아내, 그리고 큰아들과 작은 아들, 네 가족이 오랜만에 한자리에서 식사하는 시간이다. 그런데 종종 큰아들과 나는 식사 중에 늘 긴장상태에 빠진다.
어느 날 식탁에 구운 갈치 네 토막이 올라온다. 통통하게 살찐 가운데 토막, 반쯤 창자를 빼낸 머리, 가늘고 마른 꼬리로 구분되어 식탁에 놓여진다.
순간 갈치 네 토막 중 어느 부위를 누가 먹게 되는가? 신경전이 벌어진다. 나는 ‘음 저 크고 통통한 몸통은 아내가 먹도록 해야지.’ 생각한다.
만일 큰아들이 먼저 큰 몸통에 젓가락이 옮겨가면 내가 태클을 건다. “뭐야, 아직 엄마가 젓가락을 들지도 않았는데 무슨 행동이야!" 이런 경고가 떨어지면 큰아들은 머쓱해서 가려던 젓가락질을 멈추고 다른 반찬으로 방향을 옮긴다.
그럴 때면 아내는 또다시 나를 나무란다. ‘아니 당신은 늘 아들이 먹는 걸 못마땅해 하세요.’ 하는 뜻으로 눈을 흘기거나 내 허벅지를 꼬집는다. 아내는 늘 그 통통한 부분을 집어서 큰아들놈 접시에 올려놓는다.
과연 나의 아내는 남편보다 아들을 더 사랑하는 걸까?
이에 대한 궁금증은 최근에야 풀렸다. 회사연수 교육프로그램에 초대된 여성강사의 설명으로 이해가 되었다.
아내는 잠자는 아들의 얼굴을 바라볼 때면 아들의 갓난아기 때, 백일 때의 모습을 본다고 한다.
내 몸으로 낳아 젖 먹이고 키운 아들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어릴 때 아기의 모습으로 엄마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고….
반면 남편의 잠자는 모습에서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나. 밤늦게 술 먹고 취해 들어오는 찌들고 주름진 모습만 눈에 들어온다고 하니 아내가 남편과 아들 중 누구를 더 아끼겠는가?
오늘 사과 반쪽이 나와 아내와 아들을 서로 슬프게 만들었다. 나의 아내에 대한 사랑과, 아내의 아들에 대한 사랑 차이로. 나를 아들을 미워하는 의붓아비처럼 취급하는 아내의 마음을 풀어줄 수 없어 혼자 캔맥주를 들이킨다….
박흥식/방송위원회 심의국장
2007년 11월호